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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

반백수일기1:나는 오늘 퇴사를 했다.

연소님 2017. 11. 8. 23:03

오늘이었다, 자그마치 한달 반 전에 회사에 그만두겠다 이야기 하고 벌써 한달 반이라는 시간이 흘러서 오늘이 왔다. 사실 실감은 나지 않는다. 지난 7개월동안 지긋지긋하게 타고다녔던 아침 지옥철을 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다. 기나긴 7개월이었다. 사회 초년생으로서, 아니 아직은 학생인 신분으로서 제대로된 '회사'라는 곳에서 일을 하긴 처음이었다. 떨렸고, 설렜고, 무서웠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내가 '직장인'이 된다니. 언제까지고 어른의 세계로 남아있을 줄 알았던 회사라는 곳이 내 삶의 터전이 되었던게 참으로 신기했다. 

입사 후 첫 두달은 힘든 일 투성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용어들을 배워야 했고, 보고서 만드는 법을 터득해야 했으며, 바쁜 사수의 잔심부름을 맡아서 해야했다. 특히 같은직급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나는 전담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사수의 자잘한 일을 처리해야 하는 포지션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많은 일을 단기간에 해내야 했다. 나는 미숙했고, 어리숙했고, 서툴렀다. 처음 해보는 일이기 때문이란 변명을 할 수있는 기간은 한달에 지나지 않았다. 일이 손에 익지 않는 내 자신을 원망하고 자책했다. 매번 실수투성이인 내가 너무 싫었지만, 여기서 포기하고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버티고, 또 버텼다. 타기싫은 지옥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자그마치 한시간을 넘게 달려서 회사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그 시간이 너무 우울하고 싫었지만 내 선택에 책임을 지겠단 이유 하나로 참아내었다. 시간이 흐르니 자연스레 일은 익숙해졌고, 이제야 숨통이 트이는구나 싶었다.

회사란 곳은 이상한 곳이었다. 특히 우리회사는 자유분방함을 추구하지만 보수적인 이상한 곳이었다. 복장은 캐주얼이라고 했으나 캐주얼해서는 안되었다. 팀장님의 기준에 따라 옷입는 것도 달라져야만 했다. 화장은 해야했으나 진해서는 안되었다. 물론 이것도 팀장님의 기준에 그 진함의 정도가 갈렸다. 캐주얼이되 캐주얼이 아닌 몰개성한 옷을 입어야하는, 하지만 캐주얼을 표방하는 회사였다. 팀장님이 한 농담에는 재미없어도 웃어야 했고, 웃는것도 영혼이 가득 담겨있어야 했다. 리액션에 영혼이 없다고 여러번 진심을 가득담은 농담으로 감싼 꾸중을 듣기도 했다. 한번은 옥상에 쭈그려앉았다고 혼난적도 있었고, 입사하지 얼마 안된 신입이 군기가 빠졌다며 정신차리란 소리를 듣기도 했다. 왜 혼나야하는지 모르고 혼난적도 많았다. 몇달이 지나자 적응하기 시작했다. 뼈섞인 농담은 다른 농담으로 받아칠 수 있게 되었고, 적당히 적당히 모든걸 웃어넘길 수 있게 되었다. 좋게말하면 사회생활을 하는 방법을 배운 것이겠지. 상사의 성희롱 섞인 농담도 웃어넘기고, 불쾌한 관심도 웃어넘기고, 과도한 관심도 웃어넘기고, 불쾌한 말에도 웃어넘기고. 실없는 사람이 되었나 싶을정도로 참고 웃어 넘기는데 익숙해진 내 자신이 남았다. 이게 바로 힘든 사회생활 이구나 싶었고, 그 사회생활에 질식해가는 내 자신이 보였다. 

퇴사를 결심한 것은 그래서였다. 어느순간 부턴가 회사에 앉아서 일을 할때 책상에 토하는 상상을 했다. 우웩. 살면서 일이란게 이렇게 몸서리 쳐지게 끔찍했던 적은 처음이었다. 이 모든게 힘들고 지치고 때로는 절망적이었다. 이걸 견뎌내는 사람들이 대단했다. 참기가 힘들었다. 이 생활에 질려가는 내 자신이 너무 불쌍했고 싫었다. 내 스스로를 잃어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서 내 자신을 버리긴 싫었다. 내가 아끼고 예뻐했던 자신, 스스로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나는 다른 동기들 보다 자유로웠다. 내가 유학을 다녀왔기 때문에, 조금은 색달랐던 내 행동들이 유학생이란 이유로 참작된 부분이 많았다. 이상하게 받아들이기 보다는 쟤는 유학생이니까 그럴 수 있지 하면서 수월하게 넘어갔었다. 하지만, 다른사람에 비해서 일 뿐이지 회사의 꼰대들은 여전히 꼰대였고, 나를 그들이 원하는 틀 안에 끼워맞추기가 싫었다. 내가 좋아하는 내 개성을 버려야 하는 것도 싫었고, 매주 반복되는 같은 일도 지겨웠고, 상사의 지독한 농담에 웃고만 있어야 하는 상황도 싫었다. 직장인의 탈력감, 무력감, 자괴감이 이해되었다. 누구라도 이런 삶에 매몰된다면 우울해질 수 밖에 없었다. 나를 잃어가는 기분, 그 기분이 끔찍했고 몸서리쳐지게 싫었다. 나는 나 자신이고 싶었다. 내가 나임을 인정하는 곳에 있고싶었다.

회사의 부당대우도 내가 퇴사를 결심한 계기가 되었다. 지원직이었던 나는 휴가도 원할 때 쓸수 없었다. 늘 눈치를 보아야 했다. 다른 정규직 분들은 원하는 때에 제한 없이 휴가를 썼으나, 나는 모든사람의 일정이 정해진 다음에 휴가를 써야했다. 또, 계약직이었고, 페이가 적었음에도 그 이상의 일을 해내길 요구받았다. 회사에 입사를 하면서 다양한 교육을 받은 정규직과는 달리 계약직이었던 나는 사수에게 해야할 일만을 인수인계 받았을 뿐이었다. 내 스스로 공부해야 했고, 물어물어 배워야 했다. 기계적으로 일하지 말라는 그 말이 나는 너무 싫었다. 나는 기계적으로 배웠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어느순간 부터 내가 다뤄야 하는 일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기 시작했고, 말 몇마디 들은 것으로 나는 그 일을 해내야만 했다. 어느 누구도 내게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다. 머리를 끙끙 싸매며 물어물어 혼자 배워서 해결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사수의 일과 내 일의 경계가 흐려지기 시작했고, 내가 소화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요구를 받았을 때 내가 대답할 수 있는건 알겠습니다 밖에 없었다. 어떻게 어떻게 하나를 해결하고 둘을 해결하니 내가 해야하는 일은 배로 늘어나 있었다. 내가 받는 페이는 내가 하는일에 비해 너무나도 적은 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내 시간을 사기엔 너무나도 적은 돈 이었고, 이 생활 자체에 질려가는 내 자신을 구하고 싶었다. 참고 견뎌보려 했으나, 그러러면 너무나 많은 나를 죽여야 했다. 나를 살리고 싶었다. 

회사의 많은 분들이 퇴사하는 나를 부러워했다. 내게는 아직 학생이라는 신분의 방패가 남아있기 때문에 부담감이 덜하지만, 아마 그들은 생업을 위해서 일을 그만둘 수 없을거다. 지금 하는일에 만족하고 대우받는 사람도 분명히 있었을거다. 하지만, 나는 이쯤에서 포기하려 한다.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것을 잃었다. 귀중한 배움이었나 묻는 이가 있다면 귀중한 배움이었다 답하겠다. 다른사람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만하려고 한다. 


오늘 나는 퇴사를 했다.